소화데레사의 가족과 일생 | |
[소화데레사의 가족과 일생] | |
1. |
부모님(1858년 결혼 : 17년간 9명의 자녀 출산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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Louis Martin(1823-1894) : 시계-보석상(1850-1870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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Z lie Gu rin(1831-1877) : 레이스 제조 직공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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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. |
수녀가 된 자매들 |
1) |
Lisiex의 가르멜회에 5명의 수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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Marie(1860-1940) : 성심의 마리아 수녀 - 1886.10.15. 입회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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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auline(1861-1951) : 예수의 아녜스 수녀 - 1882.10.2. 입회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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C line(1869-1859) : 성면(聖面)의 즈느비에브 수녀 - 1894.9.14. 입회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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th r se(1873-1897) : 아기 예수와 성면(聖面)의 데레즈 수녀 ; 1888.4.9.입회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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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) |
깡(Caen)의 성모방문회에 1명의 수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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L onie(1863-1941) : 프랑수와즈 데레즈 수녀 ; 소화 데레사 수녀 서거 후 2년 후 입회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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3. |
어린 나이에 죽은 언니/오빠들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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H l ne(1864-1870.2.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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JJoseph-Louis (1866-1867.2.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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Joseph-Jean Baptiste(1867-1868.8.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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M lanie-Th r se (1870.8.16.-10.18.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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4. |
외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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Marie-Louise Gu rin(일명 Elise : 1829-1877) : 도지떼(Dosith e)의 마리아 수녀 ; 깡(Caen)의 성모방문회에 1858.2. 입회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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Isidore Gu rin(1841-1909) : Lisieux에서 약사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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Elisa-C line Fournet(1847-1900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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Jeanne Gu rin(1868-1938) : 결혼함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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Marie Gu rin(1870-1905) : 성체의 마리아 수녀 ; 1894.6.16. 입회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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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aul Gu rin(1871) : 태어나자마자 사망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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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생애]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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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|
알랑송(Alen on : 1873 - 1877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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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73년 1월 2일 : Marie-Fran oise-Th r se-Martin의 탄생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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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73년 1월 4일 : Alen on의 성모 성당에서 세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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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73년 3월 - 1874년 4월 6일 : Semall 에 있는 로즈 따이예(Rose Taill )에게서 양육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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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77년 8월 28일 : 엄마 젤리 마르땡(Z lie Martin)의 죽음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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두번째 엄마로 Pauline을 선택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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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. |
뷔쏘네(Buissonnets)에서 리지으(Lisieux)까지(1877 -1888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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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81년 10월 3일 : 리지으에 있는 분도 수녀원 소속 여학교에서 반기숙생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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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슬펐던 다섯 해"(1881-1885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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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auline은 리지으의 대성당의 예수님상 앞에서 자신의 성소를 발견한다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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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82년 10월 2일 : 가르멜 수녀원에 Pauline의 입회/ 두번째 엄마와의 이별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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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83년 3월 13일 : 데레사, 중병 얻음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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5월 13일 : 성모 마리아의 미소에 의해 완치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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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84년 5월 8일 : 첫 영성체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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6월 14일 : 위고냉(Hugonin) 주교에 의한 견진(그것은 사랑의 입맞춤이었다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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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85년 5월 : 세심증의 시초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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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86년 2월 : 학교 중퇴한 환자 데레사의 특별한 수업(빠삐노 아줌마댁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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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0월 15일 : 큰 언니 Marie의 입회/ 세번째 엄마와의 이별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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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2월 25일 : 데레사의 회심. "이 빛의 밤에 내 인생의 세번째 시기가 시작되었다."(자서전 A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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H.Pranzini의 회개를 위한 기도와 성취 : 가르멜 성소에 확신을 얻음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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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87년 10월 31일 : 위고냉 주교와의 만남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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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1월 4일-12월 2일 : 이태리로의 여행/ 교황 레오 13세께 입회허가 요청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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3. |
리지으(Lisieux)의 가르멜(Carmel)(1888-1897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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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주는 것이며, 자기 자신을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."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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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가르멜은, 선하신 하느님께서 내가 나를 감추기를 원하셨던 사막이었다."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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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나는 영혼을 구하려고, 특히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가르멜에 왔습니다." (Ms A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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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89년 1월 10일 : 데레사의 착복식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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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2월 12일 : 아버지의 정신병원 안치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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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0년 9월 8일 : 허원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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9월 24일 : 공적 착복예식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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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1년 10월 : 프란치스코회 프루 신부가 진행하는 피정 ; 십자가의 성 요한의 저서 탐독하는 시기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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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2년 5월 10일 : 아버지, 집으로 돌아옴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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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3년 2월 20일 : 예수의 아녜스 수녀(뽈린 마르땡)가 수녀원장으로 선출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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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4년 1월 2일 : 21세의 데레사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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6월 29일 : 아버지의 서거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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9월 14일 : 셀린의 입회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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겨울에 : 순명에 의해, 데레사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편집하기 시작 ; '작은 길'의 발견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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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5년 : 자서전 A의 편집의 해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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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월 21일 : 데레사, 쟌다르크에 관한 두번째 작품을 주연하다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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5월 30일 : 룰랑(Roulland) 신부, 그녀의 두번째 영적 오빠로 맡겨짐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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6월 9일 : (삼위일체 대축일에) 자비로우신 사랑에 봉헌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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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0월 17일 : 모리스 벨리에르(Maurice Belli re) 신학생, 데레사에게 맡겨짐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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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6년 3월 21일 : 수녀원장으로 마리 드 공자그(Marie de Gonzague) 수녀 선출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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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 목요일, 성 금요일 : 두 번의 각혈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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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활절 : 신앙 및 희망의 밤에 들어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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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내 어머니인 교회의 중심 안에서 난 사랑일 거예요. 그래서 난 모든 것일 거예요."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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9월 : 성심의 마리아 수녀를 위한 자서전 B의 편집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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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7년 4월 : 데레사, 심각하게 아픔 ; '마지막 권고들'의 시기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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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나는 죽지 않습니다. 나는 생명 안으로 들어갑니다."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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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나는 이 세상에서 매우 고통당했습니다 ; 영혼들에게 그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."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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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나는 땅위에서 선을 행하면서 나의 하늘을 지나갈 것입니다."(마지막 권고, 7월17일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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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나는 나의 파견이 시작되는 것을 느낍니다. 내가 선하신 하느님을 사랑하듯이, 그분을 사랑하게 하는 것, 또한 영혼들에게 나의 작은 길을 주는 것이 바로 나의 파견입니다."(마지막 권고, 7월 17일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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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모든 것이 이루어졌다."(요한 19,30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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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7년 9월 30일 : 데레사 서거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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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아기 예수의 데레사 수녀 서거 이후]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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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8년 9월 30일 : '한 영혼의 이야기'의 출간(2,000부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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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9 - 1900년 : 데레사의 무덤 위로 첫번째 순례자들 ; 첫번째 기적들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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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10년 : 관례의 소송 개최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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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15년 : 사도적 소송 개최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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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21년 : 베네딕도 15세, 하느님의 가경할 한만 여종의 덕들의 영웅성에 관한 시행령을 선포하다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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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23년 : 가르멜에 유물들의 이송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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4월 29일 : 비오 11세에 의한 시복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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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25년 5월 17일 : 비오 11세에 의해 로마에서 시성(500,000명의 순례자들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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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27년 12월 14일 : 비오 11세, 데레사를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와 함께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하다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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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29년 9월 30일 : 리지으의 바실리끄(Basilique)의 첫 돌을 놓음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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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37년 7월 11일 : Basilique의 개관식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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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44년 5월 3일 : 비오 12세, 데레사를 쟌다르크와 함께 프랑스의 부차적 수호성인으로 선언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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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47년 9월 30일 : 데레사 서거 50주년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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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녀의 유물들은 프랑스의 거의 모든 교구들 안에 이송된다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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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73년 1월 2일 : 탄생 100주년 기념식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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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80년 6월 2일 : 요한 바오로 2세의 리지으 순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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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나는 교회의 아이입니다. 교회는 여왕입니다. 왜냐하면 교회는 당신의 배우자 이기 때문입니다. 오 왕들의 신적 왕이시여..."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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데레사는 복음의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: "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이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입니다."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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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나는 영혼들을 비출 것입니다. 나는 사도가 될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. 나는 선교사가 될 것입니다."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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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97년 9월 30일 : 데레사 서거 100주년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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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97년 10월 19일 : 데레사,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교회박사 선포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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